

name*		김준석

subject*		목련, 딸기, 그리고 달

                            목련, 딸기 그리고 달

그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년은 어젯밤 잠들기 전 맞추어 놓은 자명종 소리에 자신의 고단함을 잊은 채 졸린 눈을 부비며 일어난다. 창문을 열고 잠자리를 정리하는 소년은 문득 오늘은 어떻게 살까 라는 생각을 한다.

"어디보자~ 그러니까 오늘은 그녀를 만나는 날이니만큼 그녀에게 달콤한 속삭임과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만 주어야지~" 라고 다짐하는 소년이었다.

소년은 수도꼭지를 돌려 온수와 냉수를 약간 미지근하다 싶게 섞어서 세숫대야에 받는다.

치약을 칫솔에 묻히며 소년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네가 아침에 눈을 떠
처음 생각나는 사람이
언제나 나였으면
내가 늘 그렇듯이

좋은 것을 대할 때면
함께 나누고픈 사람도
그 역시 나였으면....."

이를 닦는 내내 소년은 마냥 즐겁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면서도 소년은 유쾌 그 자체다.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에 스며있는 행복감에 도취되는 소년이다.

아침을 먹은 후 소년은 오늘 수업시간표를 훑어본다.

"3·4교시와 7·8교시로군~"

소년은 하숙방문을 잠근 후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정말 화창한 날이다.

쏟아지는 햇살에 소년은 하늘을 바라보며 문득 그녀의 모습을 떠 올리려 한다.

하지만 그 모습은 이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나 싶더니 곧 사라지며, 그녀의 따스한 온기와 영혼만이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아~ 왜 이럴까? 짝사랑을 오랫동안 해봐서 그러나~,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야~"

소년은 그녀를 안고 있을 때의 그 포만감만이 제일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담배를 피우고 난후 소년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한다.

수업시간에도 뭐가 그리 좋은지 가끔 실없다 싶을 정도로 웃곤한다.

옆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이상한 아저씨일세~" 라는 눈빛을 보낸다. 소년은 그것을 무시한다.

"너도 누군가를 좋아해 봐라, 큭큭큭~"

수업이 끝나고 전산실에서 메일을 확인해보니, 외국친구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크리스천 친구인데, 소년이 요즘 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면 기꺼이 성의껏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감사의 답장을 쓰고, 소년은 다시 집으로 향한다.

하숙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소년은 가볍게 양치를 마치고 라디오를 듣는다. 흥에 겨운 노래가사가 마치 소년의 마음을 노래하는 듯하다.

다시 학교로 향하는 소년.....

이번 수업은 ‘국악의 이해’라는 수업이다.

음악관으로 향하는 소년은 잠시 멈추어 서서 목련이 피어 있는 걸 본다.

"이야~ 벌써 흐드러지게 피어났군~ 지난주까지만 해도 봉우리만 있더니만~"

소년은 한참 동안을 목련을 응시한다.

"아~!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그 추운 겨울을 꿋꿋이 버틴 거였구나! 목련아 고마워~"

한참을 그렇게 명상에 잠겨 있던 소년
문득 목련 꽃송이들이 그녀의 얼굴로 피어난다.

화들짝 놀라는 소년

"아니 왜 목련나무에 깐 양파가 피었지? 흐흐흐“

소년은 소녀의 보드랍고 하얀 뽈따구를 생각하며 혼자 키득거린다.

"아유~ 귀여운 것~"

소년은 목련의 아름다움에 한참 동안이나 넋을 놓고 있다가, 짓궂은 봄바람이 불어서 목련 꽃잎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게 된다.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친다.

"그래~ 아름다운 것도 한 때겠지~, 꽃은 봄이 오면 피었다가 때가되면 지는 것이니까~, 우리의 만남도 그러하겠지~, 그렇다면 난 헤어짐마저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정도로 사랑하면 되지 않겠어?, 나 또한 사랑에 이끌려 행동할 때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기에 후회 없이 사랑하면 그만이지 뭐~"

수업을 시작하는 음악이 울린다.

소년은 산만해진 감정을 추스리며 발걸음을 강의실로 향한다.

단소를 수업시간에 배우는데 기본음도 잘 나지 않아 소년은 뾰로통해져 있다.

그래도 선생님의 시범을 유심히 살피는 소년이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역시 어려운 단소 연주이다.

이 과목을 수강한 이유는 국악기 하나라도 다루어 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맘처럼 잘 되지 않는 소년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도중 소년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팔려고 내놓은 딸기를 보게 된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딸기 한 근에 얼마에요?"

"어서와 학생~, 2천원이야"

도톰하게 살이 오르고 빛깔도 고와 먹음직스럽게 생긴 딸기를 보며 혼자 먹기엔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소년은 딸기 한 근 반을 사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해서는 딸기를 한쪽에 조심스럽게 놓는다.

저녁을 먹고 책을 본다. 전공 책을 크게 소리 내어 읽어보는 소년이다.

갑자기 그녀에게서 문자가 온다.

"오빠 미안~, 나 오늘부터 6시에 과외 시작해. 그래서 8시에 볼 거 같애~ 미안 ^^"

소년은 약간 심통이 났다. 항상 7시에 만나오다가 1시간을 더 기다려야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정신을 수습하며 낭독을 한다.

어느덧 시간은 7시 반이 되었다. 양치와 세수를 한 후, 딸기를 씻기 시작한다.

으깨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먹기 좋도록 딸기 꼭지를 띠어내는 소년.....

가방에 조심스럽게 딸기를 넣은 다음, 약속 장소로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가 먼저 와 있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치자, 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잘 지냈어?"

"웅~ 오빠~"

둘은 원광대 캠퍼스 내 둘만의 장소로 향한다. 예전부터 소년이 찜해놓은 농과대학 자연식물원 말이다.

언제나 앉았던 그 정자에 앉는다.

피곤하고 지쳤을 소녀를 위해 소년이 딸기봉지를 꺼내 놓자, 소녀는 이게 뭘까? 라는 호기심어린 표정이다.

소년이 봉지의 매듭을 조심스레 풀어헤친다.

"우와~! 정말로 딸기 가져왔네! 오빠 거마워~ 잘 먹을게~ ㅎㅎ“

그녀가 감동받은 격앙된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한다.

소녀가 딸기를 한입 베어 물자, 은은하고 달짝지근한 딸기향이 봄바람과 어우러지며 퍼져서 소년의 후각을 자극함을 느낀다.

"혼자만 먹는 겨?" 라고 하며, 소녀가 반쯤 베어 먹고 남긴 딸기를 소년이 먹어치운다.

그들은 그렇게 딸기를 먹으며 딸기만큼이나 달콤하면서도 때론 진부한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새 딸기를 다 먹어가고 있었다.

소년은 다 먹은 딸기봉투를 가방에 집어넣고, 가만히 밤하늘을 주시한다.

이윽고 소녀가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아무 말도 없는 둘.....

소년이 소녀의 어깨를 감싸며 다독거린다.

자연스레 둘이는 서로를 마주하며, 서로의 눈을 그윽히 바라본다.

가벼운 포옹이 이어지고,

조심스럽게 소년의 입술이 소녀의 입술을 포갠다.....

이내 소년의 얼굴이 소녀의 어깨 너머로 조심스레 넘어가며,

소년은 다시 밤하늘을 바라본다.

그날은 달이 유난히도 밝았다.

학찰시절에 써 놓은 글을 오랜만에 퇴고해본다.